의병에 대해 이상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더군요. 유튜브에서 찾아낸겁니다.
여기가 역사게시판은 아니지만, 의병은 군대이야기니까 썰을 풀어보겠습니다.
그리고 전쟁은 심리적인 요인도 무시 못합니다.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고, 나라를 지키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나라를 지키지 못합니다. 무기도 아무짝에 쓸모가 없지요.
결국 무기를 다루는건 사람이니까요. 과연 한국의 젊은 세대는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의지와 애국심이 있습니까?
제가 말하는 내용은 학위를 가진 박사와 역사전공자 강의를 바탕으로 제가 이해한 내용을 말하는 것입니다. 개인적 생각도 섞여 있습니다.
정확한 오피셜은 아니라는 겁니다.
하여간, 이 영상에서 말하는 의병은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에 일어난 군대입니다.
고려시대에도 백성이 몽고군에 맞서 대항한 사례가 있습니다. 산성이라는 구조 자체가 마을을 비우고 올라가서 방어를 하는 개념입니다.
노비는 병역의무가 없습니다. 병역의무를 피하기 위해 노비가 된 사람들도 있지요.
하여간 이렇구요. 먼저 임진왜란때 노비는 참전을 했습니다. 노비의 참전은 자발적이라고 봅니다. 왜냐면 참전한 노비 숫자가 많습니다.
전근대시기에 탈영은 일도 아닙니다. 유럽의 전열보병은 탈영을 자주 했습니다. 유럽은 하여간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그시대적 상황을 감안하면 개인의 자발적 의지가 아니면 의병은 유지가 불가능합니다.
700의 총이라던가, 명량해전이라던가, 진주성전투라던가, 죽을때까지 싸우거나, 죽을줄 알고도 성을 지키는 일이 임진왜란때 빈발합니다. 강요로 죽을때까지 싸우는일은 벌어질 수 없습니다. 왜냐면, 일본제국의 무타쿠치렌야가 밀림에 일본군을 밀어넣고 죽을때까지 싸우라고 했지만, 그의 군대중 사단 하나가 통째로 후퇴해버린일도 발생했거든요.
그리고 노비들은 참전의 댓가로 면천이 약속되었습니다. 왜란이 끝나고, 관아에 공노비가 없어서 일할 사람이 없다는 푸념이 기록으로 전해져 온다고 합니다.
그리고, 노비도 벼슬에 올랐습니다. 장영실이 노비입니다. 그리고 고려시대 무인 이의민이 노비출신이며, 임진왜란때도 노비출신 장군이 활약을 합니다. 드라마에서 묘사하는 노비와 좀 다르죠?
임진왜란 당시 노비 출신 장군으로는 금남군 충무공 정충신이 있습니다.
정충신은 전라도 나주 출신으로, 아전과 계집종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조선시대 법규상 어머니가 종이면 아들도 종의 신분을 세습받았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정충신은 권율 장군을 따라 종군하다가, 16세의 나이에 왜군의 포위를 뚫고 의주까지 가서 권율 장군의 장계를 선조 임금에게 올렸습니다. 이러한 의기를 기려 선조 임금은 노비에서 면천을 시켜주었습니다.
과연 강압에 의해 노비들이 참전을 한것 같나요?
전혀 아닙니다. 역사학자들은 한국은 적어도 고려시대때 민족주의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서구에서는 19세기에 민족주의가 일어나기 떄문에 서양의 잣대로는 한국사를 이해 못합니다. 고려시대때 민족개념이 있음은 기록으로 남아있다고 합니다.
다만 삼국시대때 당나라와 신라가 싸울때 고구려 부흥군과 백제 부흥군이 누구와 연합해서 싸웠냐를 생각하면, 정말 묘합니다.
의외로 우리 조상은 타민족에 대해 매우 배타적이었습니다. 만주족들을 멸시하기도 했고, 왜나라를 멸시하기도 했지요. 중국인들이 돈많고, 문화적으로 앞선것을 인정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중국인이 되고 싶어하지도 않았죠. 우리는 우리다라는 거죠.
고조선의 상투와 흰옷을 조선시대때까지 이어졌다는 것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의병은 불의에 대항한게 맞습니다. 양반이라고는 하지만, 조정에서 큰 벼슬이나 돈을 바라고 참전을 한게 아닙니다.
상식적으로 왕이 도망가는 판국에 나라지키겠다고 나선것 자체가 타인의 강요로 될 수 없는 일입니다.
의병이 강요에 의해 일어났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행위입니다.
더구나 조선시대 말이 되면 노비제는 폐지 수순이 됩니다. 1894년에 공식적인 폐지이지만, 그전부터 이미 노비제는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1801년 공노비가 해방되었습니다. 1886년 노비 세습제가 폐지 되었습니다.
다만 앞서 말했다시피, 노비제는 고용에 관계된 문제라 늙은 노비들의 반발이 있었던 겁니다. 노비들의 생계를 책임지기 싫었던 부자들이 자신들을 내다 버린다고 믿었던 거죠.
다시 의병으로 돌아가보면, 중국사도 그렇고, 일본사에서 나라가 망했다고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고 나서는 일을 들어보신적 있나요?
그들 중국이나 일본 관점에서는 의병은 도저히 이해를 못합니다. 서양역사학자 관점에서도 한국사를 이해하기 힘듭니다.
특히 19세기부터 민족주의가 생겼다는 믿음 때문에 한국사에서의 집단주의개념을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건 일본도 마찬가지이구요.
중국부터가 통일왕조가 500년 이상 가는일은 없었기 때문에, 한국사를 중국인이 이해하기는 난해합니다. 사실 중국사는 보편적인 세계사이죠.
이건 한국인이 유럽사와 중국사, 그리고 일본사를 배우면 혼란스러워하는 것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한국인 관점에서 세계사는 이해가 힘들지요. 왕을 해외에서 외국인을 데려온다고? 이해가 안되죠. 왜냐면 한국사에 익숙하니까요.
세계사 관점에서는 왕조가 500년씩이나 가는것은 일어나기 힘듭니다.
제가 요즘 느끼는 것은...
언젠가 부터 대한민국에 대한 혐오가 퍼지기 시작합니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면, 국가에 대한 애국심이 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자국 문화에 대한 혐오로 번지게 되지요.
노비제가 아름다운 제도라고 할 수 는 없지만, 그러면 다른나라는요? 과연 조선의 노비제가 다른나라보다 가혹했을까요?
일본의 부락쿠제도는 가혹합니다. 그걸 자유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다시 넘어가서 일제 강점기 시기 전에 이미 노비제는 없어졌고, 1800년때 이미 노비제는 생명력을 잃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1894년 노비제가 폐지 되었기 때문에 1910년 일제강점기때 일어난 의병은 노비가 아니었죠.
일제 강점기 시기의 노비는 없었고, 따라서 일제강점기 시기에 의병은 노비가 참전할 수 없습니다. 노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죠.
아셔야 할것은 동학농민운동도 나라를 살려보자는 백성들의 움직임이었습니다. 여기에 백범 김구선생이 접주로 활동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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