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놀랫습니다.
익히 눈팅으로 보아왔던 보배의 화력과 관심에요...
정성스레 달아주신 댓글들과 수많은 격려의 쪽지들 너무 감사합니다.
여태 눈팅만 해왔던 보배드림의 유조남들의 성향?으로....사이다의 결말과 팩트가 답인것 같아.
힘들고 구구절절하지만 해보려 합니다.저와 저와같은 사람들의 미래를 위해서요.
그냥 저의 불안감과 순간을 벗어나고자 게재하였던 단순한 푸념글에 수많은 댓글이 달리고 베스트까지 올라간 것에
격려의 쪽지와 방송국,기자,사설탐정?분들의 쪽지를 받았습니다.
고심을 하다가 도가 지나친 댓글과 공감해주시는 댓글을 보고 홧김에 연락처를 기재해주신 기자님과 연락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당시의 지역 신문은 기자님이 수소문하시는게 빠르시다 하시어 그렇게 하시기로 하셨구요.
저는 병원의 치료 기록과 인터뷰를 약속하게 되었습니다.
글이 길어질까 본문에는 일일히 쓰질 못했지만 처음 겪는 일이라 정말 댓글들 차분히 읽어 보았습니다.
오해의 소지가 있으며, 마음 먹음 김에 해명이 필요한 부분을 추가 하고자 합니다.
저는 80년생이며 잔나비띠입니다.
시골의 작은마을에서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하였으며.
제 기억으론 제 3년 후배부터 초등학교로 바뀐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댓글을 읽다보니 제 중학교 동창으로 보이는 댓글도 보이더군요.
실제로 글을 작성 한 후 퇴근 후 저녁즈음 시골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글의 내용은 아니었지만 오랫만에 안부를 묻는 정도였습니다. 저는 위로 누님만 두명이 계시며, 아래로 3살 터울의 동생이 있었으나 제가 5살경 동네 폐선 위에서 잘못 떨어져서 응급조치를 할만한 동네 병원이 없어 지체하다가 사망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제 기억에는 없습니다.
괴롭힘은 중학교 진학 후 약 3개월이 지난 시점에 시작되었습니다.
또래의 남자아이들을 마주하게 된 즐거움에 마냥 어울려다니며 살구서리,오리서리 등 그때는 어른들이 이놈~하면서
넘어가셧지만 지금으로 따지면 범죄도 하였습니다.
빠루로 터미널의 자판기를 뜯는다던가, 트럭의 기름을 뽑아서 형들에게 푼돈을 주고 팔던 모습에 놀이라고 생각했던 정도가 심해지기 시작하면서 이건 아니다 싶어 저는 친구들을 점점 멀리하게 되었고/ 댓글에 그때 당시 왕따나 괴롭힘이 없었다는 댓글 저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아마 제가 괴롭힘을 당한 것이 이시기로 생각이 됩니다.)
어느 날 갑자기 터미널 오락실로 친구가 부르기에 갓더니 같이 어울리던 친구들과 그 중의 한명과 마주보고 서서
서로 뺨을 때리라고 하더군요.저는 할 수 없다고 하였으며, 그 친구도 울먹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주동자인 친구는 표창(그 당시 커터칼을 조각내어 별모양으로 만들면 표창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둘에게 던지며 니가 맞짱 안뜨면 너네 둘다 죽는다라고 하며, 표창을 서로에게 던졌습니다.(새로 산 커터날이니 당연히 던지면 몸에 박힙니다.)
그렇게 원치 않는 주먹다짐을 하고 찢어진 옷을 입고 하교를 하곤 했습니다.
처음 옷이 찢어진 날은 어머니가 왜 그러냐 하시길래 축구하다가 찢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수업이 끝나면 이유없이 선생님을 따라한다며 뺨을 맞고 발바닥을 맞고, 손가락 발가락 사이를 막대기로 휘저었습니다.(그 당시에 선생님의 저정도 체벌은 당연했습니다.)
그러다가 수일이 지나고 제가 담임께 직접 이 사실을 알렸으며, 본 글에 작성했듯이 선생님은 저와 가해학생 몇을 학교 앞 중국집으로 불러 화해아닌 화해를 시키셨습니다.
그 후로 괴롭힘은 더욱 심해졌으며, 참새와 개구리 해부시켜서 안하면 던지기 등 본글에 썻던 내용은 일부분이며 그 정도는 더욱 심해졌습니다. 90년대 친구끼리 그럴수도 있냐는분들..폭죽을 입에 넣고 터트려 본 적 계신가요?하루종일 팬티에 얼음을 넣고 생활해 본 적 있으신가요?지금 나이에 생각하면 어이가 없죠..당연합니다..저도 제가 왜 그랬는지 상상하기도 싫습니다.
그래서인지 더욱 그 고통은 제가 만든거라 제가 나약해서 그런거라 자책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현재 학폭을 당하고 있는 그때의 우리들은 저항 할 수 없고, 너의 잘못도 아닙니다.
제가 다시 글을 쓰게 된 이유도 무분별한 댓글들과 그 이유입니다.
주작이니 더글로리니 40대에 대표이사니 하는 댓글에...
저는 회사 인수전에는 하루에 12시간 이상을 트럭을 운전하고 현재도 평균 8시간은 운전대를 잡는 화물운송 종사자입니다.
퇴근하면 잠깐 아들,딸래미 얼굴보고 샤워하고 쪽잠을 자고 새벽4~5시면 다시 운전대를 잡는 사람입니다.
전역 후 20대 후반에 잠깐 발 들였던 이쪽에서 그때 당시 대표님의 "우리나라가 운하가 있냐, 비행기 운송이 가능하겟냐?
육상화물은 절대 망할 수가 없고, 남 눈치보지말고 니가 하면 한만큼 가져 갈 수 있다"라는 말을 믿고 작업복 두벌에
뛰어들었던 일입니다.
친구들보다 덜자고 동료들보다 덜 먹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고정거래처가 생기고 저를 믿고 따라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옆에 남아있어 지금자리까지 오게되었습니다. 자연스레 친구들은 멀어지고 업무적으로 마주치는 사람들과만 친분을 쌓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그게 더 저한테는 편했구요..그 사람들은 제 과거를 알지 못하니까요..
중학교 때 저를 그렇게 괴롭혔던 친구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제가 근처 시에 고등학교로 진학을 하니 나중에 그 학교 친구들에게도 연락이 닿아(지역이다보니 출신 중학교를 따져 서로서로 알게 되더군요)그 새끼 잘못 건드리면 농약 원샷하는 놈이다 조심해라. 이렇게까지 하던 인간입니다. 고등학교 진학과 동시에 아버지의 죄책감인지 모를 반강제적인 권유로 2년을 함께 운동을 시작하고 키도 크고 멸치같던 몸도 커지면서 고등학교 시절은 조용히 공부만 하면서 보냈습니다.
지금의 와이프를 만나게되고 와이프는 제가 학창시절 그런일을 겪었다는 것을 이 글을 지금도 모르고 있습니다.
가끔 뉴스나 드라마에서 소재로 나올때면 같이 맥주 한캔 곁들이며 저는 쟤들이 나약해서 그런거다 왜 덤비지 못하는지 모르겟다.우리 아이는 저렇게 안키울거다.하며 겉으론 강한척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다가 수년이 지난 후 본글과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고 그게 오늘 오전의 일입니다.
여지껏 예전의 나약햇던 나를 자책하고 욕하면서 지냈는데 그 인간을 다시 마주하는 순간 심장이 미친듯이 뛰고,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경험을 하며, 깨달았습니다..아 그게 아니였구나.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이 두려움을 깨부술 수 없는 인간이구나.
순간을 마주하니 저의 자존감은 14살때로 바닥을 쳤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댓글에 복수를 해라하시는데 솔직히 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무섭습니다.두렵습니다. 지역 협회에 이 인간을 채용하지 말라.주소를 찾아가서 따지고도 싶지만...
저는 못할 것 같습니다.사랑하는 와이프와 저를 믿고 따라와 준 직원들과 아빠만 바라보는 딸과 아들에게 해코치를
할 까두려워..그 것이 무서워 못할 것 같습니다.
이게 유소년기의 학폭의 트라우마입니다.
댓글 다신 분들 정말 이게 순간의 장난같고 주작같아 보이십니까?
20여년이 지난 고통이 이 정도입니다.요즘은 어떨까요?
저는 이번일을 계기로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네 잘못이 아니라고..제발 견디라고..
평생의 치부를 숨기고 버텨왔다가 어디에 말할 곳이 없어 터져버릴 것 같아 순간의 불안함과 두려움을 떨치고처
가끔 들르던 이 곳에 글을 남겼습니다.
지금까지 두서없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용기내어 기자님과 연락 후 기사화 해보고자 합니다.
결과가 나올때까지 더 이상 추가글은 게시하지 않겠습니다.
다들 힘을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4층 베란다에 서서 여기서 떨어지면 한번에 안 죽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내가 언제 베란다에 왔는지 이전 한두시간이 기억에 없더군요. 몸이 상하는것도 신경안쓰고 살았습니다. 오래 살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오만가지 생각과 다짐 분노 억지 희망들..안해본 게 없었습니다.
억지 희망을 스스로에게 주입하며 버텨서 지금은 그래도 살만 합니다.
문득 생각이 날 때도 있고 분노가 날 덮칠때도 있지만 잘 추스리며 지냅니다.
우연히도 어느날 제가 차를 타고가다 신호등에 대기하는데 마주친 한눔이 있었습니다. 제 차를 보고 살짝 놀라는 듯 하더군요.
내가 우선 잘 살아야 하는구나 복수하던 하지 않던..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잘 살아오신 것 같고 앞으로도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화이팅입니다!
학폭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공론화 되는 것도 우리의 자식세대를 위해 좋은일입니다.
학폭없는 건강한 대한민국과 행복한 학교를 꿈꾸어봅니다.
앞으로는
좋은일만 ~~~~
응원합니다
본인의 행복이 최대의복수 이말싫지만 그냥행복하게 사세요.
저도 현재는 최고를 꿈꾸는 작은회사 오너입니다 님께서 올린 글보고 잊고 있었던 수십년전의 기억이 떠올라 요 몇일간 퇴근하고 혼술하며 풀고있네요 누군가 그랬습니다 최고의 복수는 지금 내가 ㅈㄴ잘사는거라고... 그새끼한테 찾아가서 신나 뿌리고 불질러봐야 잃을게 많은 내손해라는걸 살면서 더더욱 느끼게 됩니다 기억과 추억이란게 항상 좋은것만 있으면 재미없잖아요..?
글쓰신분도 저처럼 지금껏 성장하는데 제일 큰 원동력이 결핍,인내,노력인거 같은데 앞으로도 잘극복해 보시죠!
남아 있지만 가장 깊은곳에 봉인 하시고
앞으로 즐거운 일 많으실 겁니다
'더 글로리'가 생각나네요.
그렇지만 개인의 복수보단, 가장으로서의 현실적인 '타협'을 하셨기에 안타깝지만! 큰 박수를 보냅니다!
결국 그 댓가를 오롯이 치르게 되죠.
자신이 어떤 짓을 했는지
처절하게 느낄수 있도록...
저런인간은 평생 불행하게 살아야 돼요
번창하세요~
나쁜짓을 하면 벌 받아야죠
가해자 자식이 학교폭력을 당했다면
참 ,,,
힘드셨을 지난날 어떻게 잊으라고 하겠습니까.
쉽게 잊을 수 없다는 거 압니다.
힘내셔요. 잘 견디시고 잘 살아오셨습니다.
사장과 면접자로 만나그게 반은한겁니다.
그놈은 면접다운면접도 보지도못하고 나보다못낫다생각해서 괴롭혔던사람이 높은자리에서 내려다봤으니 자기인생은 얼마나한심해보였을까요...훌훌터러버리세요
저도 학창시절에 유독 절 괴롭히는 놈이 있었는데 몇년전 꼬추친구넘 결혼식에서 마주했었는데요 똑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과거 그 기억에 속이 꿈틀거렸지만 전 와이프에 애들에 직장 잘 다니고있는 제가 더 잘살고있는 현재에 만족하며 맘을 달랬었네요..
다시는 볼일없겠지만 반드시 불행했으면 합니다
화이팅하시고 한잔하고 털어버리자구요~!
토 달고 그런건 아닌데 하나 잘못된 정보는 83년생까지 국민학교 졸업입니다. 일부 지역은 84년생도 국민학교 졸업도 있다고 하구요. 정확한 정보 공유차원에서 적어봤습니다.
자업자득.
뿌린데로 거둘겁니다..
화이팅하셔요
사실이길 바라지만 솔직히 주작이 명확하기때문에 인증은 해주셔야 겠습니다
언제 해줄건가요
관심받고서 보배인들 주목받고 싶어서 누구나 공분살수있는 글을 올리는거 잖아요
사실을 써야지 왜 자작극을 하냐 이거죠
그래서 자기가 인증한다길래 인증하라고 한거에요
근데 안하잖아요 못하는거죠 소설이니까.
그럴듯하게 꾸며낸 소설은 인간적으로 아니지 안나요?
이래이래서 난 주작이라고 확신한다... 팩트라면 내말에 반박하고 인증해봐라...
이게 순서 아니냐구요...
저는 저글에 공감이 갑니다
그리고 한번쯤 겪어본 일들이라 이해도 가구요 그렇다고해서 글을 지어내 많은 사람들의 공감으로 자기 만족을 하는사람 이건 아니지 않냐는 거에요
보배에서 이런사람 한둘이 아닙니다
엄청 많았고 앞으로도 이런글 계속쓰겠죠 공분글에 공감받아 베스트가고싶어서..,
지금까지 이런글 누군가 의심하면 인증한다 해놓고 인증한사람 단한명도 못봤습니다
의심 근거가 뭐냐구요?
여러개 있지만 일단 농약입니다
우리동네 농약마시고 자살한 사람두명있었어요 어떻게 죽었는지 아십니까?
피토하고 고통속에 몸부림치다 죽고 병원에서 위세척 하는도중에 죽었습니다
농약은 독약이에요 일단 마시고 바로 위세척해도 그위력이 장난아닙니다 후유증으로 고생합니다 근데 담배도 많이 피우고.
어쨋든 농약먹고 잤데요 깨보니 병원?
농약먹고 기절못합니다 할수가 없어요
여기서 글쓴이가 오류를 범한거죠
주작이면 어떠냐 넌 저글에 공감 못하는거냐?아니죠 공감합니다 근데 글을 지어내지는 말자는거죠
사업자인증글이나 뭐 방송국에서도 연락왔다잖아요 자기가 한다해놓고 왜 이런건 안할까요?
그놈에 압력에 못견뎌 그때 50원하던 자야라는 과자 , 우리 전빵에서 갖다 바치고 , 그놈은 다른동네 애들에게는 찍소리도 못하는게 같은 동네 아이들만 때리고, 공부는 못해서 한살 꿉어가지고 학교다니면서 지랄 했지 지금 이글을 보니 생각이 나네요 학교 폭력의 피해자는 그때를 잊을 수가 없다. 가해자는 기억도 안 하겠지만
고딩때 잘나간다? 이런식으로 애들 괴롭히고 하던놈 있는데
주유소갔는데(bm 5신차탐)
허름한옷차림에 제차에 기름 넣어주데요
너 누구아니냐 하니 맞다고 주우소 차렸냐 하니 아. 머한다고 잠시알바해 하더군요 그냥 말 몇마디로 존심은 뭉개고 왔습니다ㅋㅋ
그때 친구들 괴롭힐땐 니가 영원할지 알았냐ㅋㅋ
그래야 "내가"삽니다
저는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서 살았으며 작성자분이 말씀하신 대부분을 겪었습니다
다른점이라면 저는 자살할 용기조차 없었던 놈이었구요
초등학교 6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4년가까이 저를 걸레짝찢듯 괴롭히던 놈의 이름은 "김종현" 이었습니다
인수국민학교, 인수중학교 졸업생이구요
그 트라우마 백번 이해합니다
성인이 되고 마주치면 4년간의 복수를 언젠간 할테다 할테다 다짐하면서도, 막상 20대에 한번 마주쳤었는데
몸이 그자리에서 얼어붙더군요
아이러니하게도 복수는 커녕 부들부들 떨리고 몸이 말을 듣지 않으며 뇌정지가 온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 놈은 저에게 그런 존재였습니다
작성자분의 글을 읽고 나와 같은 사람이 나 혼자뿐만이 아니구나... 싶기도 하고 그런복수를 하고 싶기도 합니다
같은 시대 같은 시절, 같은 학폭 피해자로서 당신을 응원합니다
심지어는 학폭가해자가 판사, 검사 등 법조인, 목사 등 종교인이 되는것도 한둘이 아닐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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