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재야' 장기표, 암 투병 끝 별세…
"할 만큼 했고, 이룰 만큼 이뤘다"
'영원한 재야'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이 22일 별세했다. 향년 78세. 유족 등에 따르면 장 원장은 담낭암 투병 끝에 이날 오전 1시 35분께 입원 중이던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숨을 거뒀다. 사진은 1988년 12월 21일 충남 공주교도소에서 민통련 정책실장으로 투옥됐던 고인(왼쪽 세 번째)이 가석방된 뒤 부인 조무하(두 번째)씨와 전태일 어머니 이소선(네 번째) 여사와 어깨동무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영원한 재야’로 불리는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이 22일 별세했다. 향년 78세.
고인은 1945년 경남 밀양에서 4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나, 마산공고 졸업 후 서울대 법학과에 진학한 뒤 학생운동에 나섰다. 1970년 전태일 열사 분신사건을 계기로 사회운동에 본격 투신했으며, 당시 전 열사의 어머니인 이소선 여사를 만나 시신을 인수한 뒤 서울대 학생장으로 장례를 치르는 데 앞장섰다. 전 열사 관련 자료를 수집한 뒤 조영래 변호사에게 전달해 전태일 평전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2009년에는 전태일기념사업회 이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 민청학련 사건, 청계피복노조 사건 등으로 1970~80년대에 9년간 감옥에 수감됐고, 12년간 수배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민주화 운동에 따른 보상금을 일절 수령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장 원장은 2019년 한 인터뷰에서 "국민 된 도리, 지식인의 도리로 안 받은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992년 총선을 시작으로 일곱 차례 국회의원 선거에 나서 모두 떨어졌다. 마지막 선거였던 2020년 총선에서는 보수정당인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후보로 나섰다. 이처럼 한평생 노동, 시민운동에 헌신했음에도 제도권 정치에는 진출하지 못해 '영원한 재야'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훌륭하신분이나 말로가 이해가 안갑니다.
김문수,김지하 처럼 본인의 한계를 악마의 힘이라도 빌려 극복하려한걸까요.
삼가 고인의명복을 빕니다.
가장 대표적인 게 김지하죠. 나는 말로만 미국에 대해 전혀 모르고 반미를 외쳤다. 그래서 미국에 직접 가보니까 상상 이상이라 충격을 받아 저항이 무의미하단 걸 깨달았다. 직접 쓴 말입니다...
반미는 힘으로 하는게 아니고
도덕적 인권적인 반대지 어떻게 힘으로 미국과 상대하겟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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