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 의사의 폭탄에 뒤진 새끼가
일본군 대장 시라카와 요시노리 입니다.
그런데 조선인 중에 시라카와 요시노리의 원수를 갚겠다며,
시라카와 요시노리로 창씨개명을 하고,
간도특설대에 들어간 자가 있습니다.
조선인 그자가 바로 백 선 엽 입니다.
<간도특설대>가 어떤곳이냐.
1. 설립일 : 1938년 12월 1일
2. 창립취지 : "조선의 독립군은 조선인으로 잡는다"
3. 대원구성 : 일본인 장교 외 모두 조선인
4. 선 지원검증 후 대원으로 선발
간도특설대는 일본 놈들이 뽑은 게 아닙니다.
선 지원.. 네 조선인 중에 독립군을 죽이겠다고 선 지원한 자들입니다.
백선엽은 1943~45년까지 활동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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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 = 시라카와 요시노리 = 간도특설대
이정도는 기억해 주세요~
2찍일베논네 아닌척 오지네ㅋ
창씨개명 한고야? 그런고야?
간도특설대는 복무한 전원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어있슴
개 잡ㄴ의 새끼야
내 자서전 보면 미안함을 느낀다는 소회도 적었다.
내가 민족을 위한거라면 일말의 미안함을 가졌겠나?
그런 개소리는 누구입에서 나왔나?
게릴라전을 빨리 끝내야 한다는 다짐도 백선엽 본인.
https://www.bobaedream.co.kr/view?code=freeb&No=2941420&rtn=%2Fmycommunity%3Fcid%3Db3BocW1vcGhxbW9waHNmb3Boc2lvcGhxbW9waHFtb3BocjVvcGhybQ%3D%3D
공은 공대로 인정하고 과오는 과오대로 비판하면 되지요..
백선엽이는 6.25전쟁의 영웅이 아니다!
1. 개전처기 개성및 파주 지역 경계작전 부대였던 1사단괴멸 직전까지 가는 상황으로 피해를 입고 장병들은 알아서 남으로 튀어튀어 그 패잔병들이 김홍일 방군께서 수습하여 한강 이남에서 북한군 3일단 묶어둠!
그후 낙동강 전선에서 낙오했던 1사단 병력들일부가 백선엽 휘하로 들어감 이걸 혹자들은 사단 편제를 유지 하면서 후퇴했다고 지랄들~
2. 다부동 전투는 미군덕분에 승리 할수 있었지 백선엽이 작전을 잘 짜서 이긴 전투가 아니다!
먼저 미군의 빵빵한 화력 지원이 있었음! 고사포 18문 105미리 야포 18문등 그리고 백선엽휘하 부대의 낙동강 방어구역자체가 양옆으로 미군이 있고 자기는 중앙에 위치했고 마침 백선엽 방어구역의 북한군 장교가 귀순하여 적 중요 화력 진지 좌표를 찔러줬음! 전투에서 지면 이상한거였음!
3. 백선엽은 간도특설대 활동에대해 자서전에 쓰긴했으나 사과나 후회의 글은 한자도 없음!
어쩌라고~ 이런 태도!
4. 유일하게 여순 사건때 빨치산 토벌명목으로 부하들이 보성 근처 한 부락400여호의 민가를 다 불빌러버리고 보고하기를 빨치산들이 불질렀다고 보고 함(빨치산들이 미쳤음? 부락민들에게 밥이나 음식을 빌어먹고 협조를 구해야 할판인데) 그사건에 대해서 백선엽이는 부락민들에게 사과 했음!
이게 유일함! 지리산 공비토벌 명목으로 수많은 부락민들을 광주로 후송하려랄때 부하장교가 말림! 얼어죽는다고 그러나 실행함 실제로 많은사람이
추위와 배고픔에 사망함!
5. 베트남전때 미군의 고전에 대해서 책을씀!
게릴라에 대해서 너무 미군이 모른다
ㅋㅋ 지 주특기가 간도 특설대 때 한국전쟁때 게릴라 소탕전이었음! 그걸 지랑삼아 씀!
박경석 장군은 6.25다부동 전투때 백선엽 휘하처급 징교였음! 그분이 꼽은 6.25영웅은 김홍일장군
김종오 장군 미군 워커, 맥아더 였음!
김종오 장군은 개전시 6사단장으로써 북한의 남침을 확신하고 장병들 외출외박 없이 영내 비상 대기 체제였음! 개전후 춘천홍천지구 수비에 만전을 기해 북괴남침을 저지함 원래 춘천쪽 북한군이 손쉽게 춘천을 점령하고 주력은 서울쪽 북한군과 같이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올려고 했는데 마침 김홍일장군이 서울에서 북한군 묶었고 김종오 장군또한 춘천지역에서 북한군을 저지시켜서 유엔군 참전획정의 시간을 벌게된 결과
김종오 장군은 강제징집으로 일본군에 몸담았다가 해방을 맞이하심(돌아가실때 까지 일본군(비록 징집이었지만) 에 몸담았던것에 부끄러워 하셨다고 이야기함!
여하튼 백선엽이는 역사의 민족의 죄인이기에 공 과 과를 논할 필요가 없음! 당시 처참한 한국군의 인력 부족으로 30대에 군단장까지 한 그저 쌔뻑을 타고남!
해방되었을때 간도특설대 있다가 잽싸게 양복으로 갈아입고 두만강 건너 해방된 조선으로 밀입국(튀어야 산다) 6.25 발발시 에도 남침이 확실시되는데도 장병들 외출외박 허락 당시 군부내 남로당 총책 박정희가 구사일생으로 살아서(백선엽이 살려줌) 정보병과 군속(요즘식으로 군무원)일하게 하며 월급도 자기 판공비로 주면서 일을 시켰는데 박정희도 북한의 남침을 확신하고 있었고 여러차례 보고도 했지만 묵살한게 백선엽임! 그리고 백선엽이 영어를 좀 했다함! 그래서 미군들과 졸라게 인맥을 쌓음! 미군들 양민학살에 묵인을 함!
박정희와 백선엽의 공통점
가난, 머리좋음, 사범대, 만주봉천 군관학교(일본) 일본군 복무 기회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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